한 사람이 악보 한 장을 펴 본다. 1727년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성금요일 오후. 바흐가 자기 손으로 적은 악보가 책상 위에 놓여 있다. 한 페이지 끝에 세 글자가 적혀 있다 — SDG.
같은 곳을 우리도 안다. 누구나 한 번은 바흐 음악을 들어 본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골드베르크·평균율. 그러나 그가 평생 가장 많이 쓴 음악은 따로 있다. 예배 음악. 칸타타 약 200곡, 수난곡 두 편.
그 중에 가장 큰 곳이 *마태수난곡*이다. 합창·아리아·코랄 68곡. 연주시간 3시간. 두 합창단·두 오케스트라가 동시에 무대에 선다. 한 음악이 마태복음 26~27장 전체를 음으로 옮긴 결.
왜 이렇게 길게 썼는가. 한 가설은 이렇다. 바흐에게 음악은 신학의 운반 수단이었다. 설교가 말로 운반한다면 음악은 다른 차원으로 운반한다.
1차 출처에서 바흐의 직접 표시가 있다. 자필 악보 끝마다 'S.D.G.' — Soli Deo Gloria('오직 하나님께 영광') [PEER, 3단어]. 그리고 첫 페이지에 'J.J.' — Jesu Juva('예수여 도우소서'). 작업 시작과 끝의 두 표시. 한 사람의 평생 작업 자세가 두 약자에 결잡았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있다. 19세기 일부 음악학자는 SDG를 시대 관습으로 보았다. 바흐가 단순히 따른 것이지 개인 신앙은 아니라는 결. 그러나 1차 자료는 다른 결을 보여준다. Wolff 평전 표준(2000)은 정직하게 말한다 — 동시대 다른 작곡가들은 SDG를 일관되게 적지 않았다 [PEER]. 바흐만 매 페이지에 적었다. 관습이 아니라 본인 결과였다.
표면 너머 구조를 보면 음악 자체가 신학이다. 마태수난곡의 합창 'Wir setzen uns mit Tränen nieder'(우리는 눈물로 내려앉습니다) 마지막 코랄. 음의 진행이 무덤으로 내려가는 모양을 그린다. 베이스 라인이 한 음씩 내려간다. 가사와 음악이 분리되지 않은 결.
한국어로 옮기면 어떤가. 동양에서는 정악·범패가 비슷한 곳에 있다. 음악이 가사·신앙·시간을 한 지점에서 운반한다. 두 음악 전통이 다른 시대·다른 문화에서 같은 구조를 보였다.
일상에서는 한 강사가 강의 자료를 만들 때 그 자료가 어떤 가치를 운반하는지를 의식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PPT 한 장에 무엇이 운반되는가. 마치 강물이 무엇을 싣고 흐르는가의 것과 같다. 강물 자체가 아니라 그 안의 흐름이 결정한다.
결국 한 문장으로 — 바흐의 음악은 단순한 작곡이 아니라 신학을 운반하는 정교한 도구다. SDG 세 글자가 평생 작업의 좌표다. 오늘 한 동작은 자기 강의·일·작품 1단위 옆에 "이것이 무엇을 운반하는가"를 한 줄로 적어 보는 것이다. 이 글이 답하지 못한 부분은 마태수난곡 마지막 합창의 음 진행이 어떻게 가사 의미와 정확히 일치하는가의 분석이다. 다음 단계는 BWV 244 자필 악보 첫 30마디 정독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