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스위스 베른 특허청. 한 사람이 책상 앞에 앉아 한 해 동안 4 논문을 적었다. 아인슈타인 26세. 그의 정식 직업은 특허 심사관 3등급. 학계 밖이었다.
같은 곳을 우리도 어렴풋이 안다. E=mc²이라는 식을 안다. 그러나 그 식이 1905년 한 해에 다른 3 논문과 함께 한 사람에게서 나왔다는 것은 잘 모른다.
그 한 해의 지점에서 4 논문이 차례로 *Annalen der Physik* 17권에 실렸다. 광전효과(3월) → 브라운 운동(5월) → 특수상대성(6월) → E=mc²(9월). 한 학기에 한 편씩.
왜 4 논문이 한 해에 한 사람에게서 나왔는가. 한 가설은 이렇다. 학계 밖 곳이 그를 자유롭게 했다. 학위·교수직·평가에 매이지 않은 지점에서 자기 사고가 자기 손으로 직접 갔다.
1차 출처에서 그가 6월 논문 §1에 적은 한 줄이 있다 — "우리는 모든 좌표계에서 동일한 자연 법칙이 성립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Zur Elektrodynamik bewegter Körper", *Annalen der Physik* 17, 1905, [PEER 1차, 16단어 번역]). 한 가정에서 시공간 전체가 다시 짜인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있다. 1905년 당시 학계 일부는 26세 특허청 직원의 4 논문을 "비전공자의 추측"으로 보았다. 그러나 1차 자료를 보면 결이 다르다. Pais 표준 평전(1982, [PEER])은 정직하게 분석한다 — 4 논문 중 광전효과 한 편이 1921년 노벨상을 받았다. 나머지 셋도 20세기 물리학의 거의 모든 곳에 닿았다.
표면 아래를 들여다보면 다른 곳이 보인다. 아인슈타인의 신앙 좌표는 정직하게 정리해야 한다. 그는 인격적 신은 거부했다. 그러나 그가 자주 인용한 한 줄이 있다 — "하나님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Born에게 보낸 편지 1926, [PEER 1차]). 그가 본 신은 스피노자의 신 — 우주의 합리적 질서. 종교 비판자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자기를 두었다.
한국어로 옮기면 어떤가. 동양에서는 한국 정약용이 유배 지점에서 한 해에 여러 책을 적은 것과 비슷하다. 학계와 떨어진 지점에서 자기 손으로 자료가 쌓인다. 두 사람이 다른 시대·다른 문화에서 같은 구조를 보였다 — 학계 밖이 자유의 곳이 되기도 한다.
일상에서는 한 강사가 자기 곳이 학계·기관에 인정받지 못한 시기를 두려워하는 것과 비슷하다. 아인슈타인은 다른 곳을 가리킨다. 학계 밖 한 해가 평생 작업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마치 한 우물 파는 사람이 빈 지점에서 시작해야 새 물맥에 도달하는 것과 같다.
결국 한 문장으로 — 아인슈타인의 1905 4 논문은 26세 특허청 직원이 한 해에 20세기 물리학 전체를 다시 짠 1차 자료다. 학계 곳이 아니어도 사고는 흐른다. 오늘 한 동작은 자기 분야에서 학계·기관에서 인정 못 받은 결 1개를 떠올리고 그 지점에서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 한 줄로 적어 보는 것이다. 이 글이 답하지 못한 부분은 1905년 6월 논문에서 동시성(simultaneity)의 정의가 어떤 사고 실험에서 나왔는가다. 다음 단계는 *Annalen* 17 (1905) 891-921 §§1-3 정독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