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6년 봄. 모라비아 브륀 수도원 정원. 한 사람이 책상 앞에 앉아 완두콩 종자 한 봉지를 펴 본다. 멘델 34세.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사. 그가 8년 동안 이 정원에서 같은 작업을 한다.
같은 곳을 우리도 어렴풋이 안다. 학교에서 우성·열성을 배웠다. 그러나 그 법칙이 한 수도사의 정원에서 8년 동안 28,000개의 완두콩을 직접 교배해 나왔다는 것은 잘 모른다.
그 8년의 지점에서 그가 한 작업은 단순하다. 키가 큰 완두 × 키가 작은 완두. 자손 1세대는 모두 키가 컸다. 그 자손끼리 다시 교배. 자손 2세대는 약 3:1로 키가 큰 것과 작은 것이 갈렸다.
왜 3:1인가. 한 가설은 이렇다. 부모가 자손에게 "단위(unit)" 두 개를 따로 물려준다. 한 단위가 다른 단위를 가린다. 그러면 비율이 자동으로 3:1로 나타난다.
1차 출처에서 그가 1866년 논문 §6에 직접 적은 한 줄이 있다 — "이 두 형태의 비율은 모든 실험에서 평균 약 3:1" (*Verh. Naturf. Verein Brünn* 4, 1866, [PEER 1차, 14단어 번역]). 단순한 비율 한 줄. 그러나 그 한 줄이 20세기 생명과학 전체의 출발점이 됐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있다. 1866년 당시 학계는 멘델 논문을 거의 읽지 않았다. 다윈도 그 논문을 받아 두었지만 펼쳐 보지 않았다. 35년 동안 잊혔다. 1900년에 세 학자(de Vries·Correns·Tschermak)가 따로 같은 결과에 도달하면서 그가 35년 전 적은 자료를 재발견했다.
표면 아래를 들여다보면 다른 곳이 보인다. 멘델은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사였다. 그의 작업은 수도원 일과의 한 결과였다. 강의·논쟁·정치가 아니라 정원에서 8년의 침묵. 그가 적은 일지 페이지가 수만 장이다 (Mendel Museum 자료 [PEER 1차]).
한국어로 옮기면 어떤가. 동양에서는 한국 정약전의 *자산어보*가 비슷한 곳에 있다. 흑산도 유배 지점에서 어류 226종을 직접 관찰해 적었다. 학계와 떨어진 지점에서 자기 손으로 8년 자료를 모은 결. 두 사람이 다른 시대·다른 문화에서 같은 구조를 보였다.
일상에서는 한 강사가 자기 분야에서 짧은 시간에 큰 결과를 기대하는 것과 비슷하다. 멘델은 다른 곳을 가리킨다. 8년 28,000개. 한 곳에 머무는 시간이 자료의 깊이를 결정한다. 마치 한 우물 파는 사람이 같은 곳을 매일 한 삽씩 8년 동안 파야 물에 도달하는 것과 같다.
결국 한 문장으로 — 멘델의 1866 논문은 한 수도사의 정원 8년이 학계 없이도 20세기 전체의 토대를 만들 수 있다는 1차 증거다. 사후 재발견의 결. 오늘 한 동작은 자기가 8년 동안 한 곳에 머물면 어떤 자료가 쌓일지 한 줄로 적어 보는 것이다. 이 글이 답하지 못한 부분은 멘델이 1866년 이후 1884년 사망까지 18년 동안 왜 다른 논문을 거의 발표하지 않았는가다. 다음 단계는 *Verhandlungen* 1866 §§1-5 정독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