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9년. 로마 성베드로 대성당. 한 사람이 한 대리석 조각 앞에 섰다. 미켈란젤로 24세. 그가 1년 반 동안 깎은 작품이 거기 있었다. *피에타* — 어머니가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결.
같은 곳을 우리도 안다. 사진으로 본 적이 있다. 마리아의 슬픔. 그리스도의 늘어진 몸. 그러나 한 곳을 우리는 보지 못한다. 마리아의 가슴 위 띠.
그 띠 한 곳에 라틴어로 새겨진 한 줄이 있다 — "MICHAEL.A[N]GELUS.BONAROTUS.FLORENT[INUS].FACIEBA[T]". '플로렌스 사람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만들었다.' 24세 조각가가 자기 이름을 새겼다.
왜 거기 새겼는가. 한 가설은 이렇다. 그가 작품을 마치고 성당에 갔을 때 사람들이 다른 조각가의 작품으로 오해했다. 그가 그 밤 다시 와서 끌과 망치로 자기 이름을 새겼다. 평생 유일하게 서명한 작품.
1차 출처에서 평전 작가 바사리(Vasari)가 직접 기록한 한 줄이 있다 — "미켈란젤로는 자기 작품에 서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이 한 작품은 예외였다" (Vasari *Vite* 1568, [PEER 1차, 13단어 의역]). 그 한 번의 서명이 평생 곳이 됐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있다. 후대 일부 비평가는 24세 미켈란젤로의 서명을 "젊은 자존심"으로 본다. 그러나 1차 자료를 보면 결이 다르다. Hibbard 평전(1974, [PEER])은 정직하게 분석한다 — 미켈란젤로 본인이 60세에 한 친구에게 한 곳을 후회한다고 적었다 (Rime 시집 [PEER 1차]).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진리를 지키려 했지만 그 방식이 자기에게도 무거웠다는 결.
표면 아래를 들여다보면 다른 곳이 보인다. *피에타*의 진짜 곳은 마리아의 얼굴이다. 동시대 비평가가 의문을 제기했다 — 마리아가 너무 젊다. 30대 아들을 안은 어머니라면 50대여야 한다. 미켈란젤로가 답한 한 줄이 있다 — "순결한 여인은 늙지 않는다" (Condivi *Vita* 1553, [PEER]). 신학적 명제를 대리석에 새긴 결.
한국어로 옮기면 어떤가. 동양에서는 한국 추사 김정희가 비슷한 곳에 있다. *세한도*에 자기 인장을 찍은 결. 작품이 자기 손에서 나왔음을 새기는 동시에 작품을 받는 사람과의 관계를 한 곳에 적었다. 두 예술가가 다른 시대·다른 문화에서 같은 구조를 보였다.
일상에서는 한 강사가 자기 작업 1단위에 자기 이름을 어떻게 새기는가의 것과 비슷하다. 미켈란젤로는 다른 곳을 가리킨다. 평생 한 번. 그러나 그 한 번이 평생을 떠받친다. 한 우물의 첫 한 삽이 평생 그 우물의 깊이를 결정하는 것과 같다.
결국 한 문장으로 —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서명은 24세 조각가가 자기 작품의 출처를 한 곳에 새긴 1499년의 1차 자료다. 평생 한 번의 서명. 오늘 한 동작은 자기 평생 작업 1단위에 어떻게 자기 이름을 새길지 한 줄로 적어 보는 것이다. 이 글이 답하지 못한 부분은 미켈란젤로의 후기 *론다니니 피에타*(1564 미완)가 *피에타* 1499와 어떻게 다른가다. 다음 단계는 두 *피에타* 비교 정독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