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수학·논리 · 물리·광학 정독 1회 2026-04-30

Pantokrator — 자연 법칙의 책 끝에 신학을 적은 한 페이지

뉴턴 *Principia* 1713년 2판 일반주해 정독
1687년 출간된 *Principia* 초판은 수학 책이었다. 1713년 2판 끝에 한 페이지가 추가됐다. 'General Scholium'이라는 제목의 일반주해다. 거기서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 다음 자리에 신을 적었다. 한 사람 안에서 자연 법칙과 신이 어떻게 같이 살았는지의 1차 자료, 그리고 그 자료가 후대에 어떻게 분리되어 흘러갔는지의 흔적.

1687년 7월, 런던에서 한 책이 인쇄됐다. 라틴어로 쓰인 책의 제목은 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그 안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이 처음 활자가 됐다. 한 사람이 우주의 운동을 수학 한 줄로 압축한 결과였다. 이 초판은 끝까지 수학책이었다.

26년이 지난 1713년에 2판이 나왔다. 2판에는 1판에 없던 한 페이지가 추가됐다. 'General Scholium' — 일반주해. 위치도 의미심장했다. 책의 본문이 끝나는 자리, 만유인력의 법칙 다음에 놓였다. 거기서 뉴턴은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한다.

이 가장 아름다운 태양과 행성과 혜성의 체계는 오직 지적이고 강력한 존재의 계획과 통치에서만 나올 수 있었다. — Newton, Principia, General Scholium, 1713

수학자가 책 끝에 신학을 적었다. 부록으로 슬쩍 끼워 넣은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놓았다. 자연의 법칙이 책의 본문이고, 그 법칙의 통치자가 책의 결론이었다. 일반주해 안에서 그는 한 단어를 명시적으로 사용한다. Pantokrator. 헬라어로 '우주의 통치자'라는 뜻이다. 그는 신을 추상적인 철학 개념으로 두지 않았다. 통치자라는 구체적인 역할로 두었다.

이 단어 선택이 의미가 있다. 17세기 영국 자연철학자가 라틴어 책 끝에 헬라어 단어를 가져온 자리. 그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 자주 쓰는 표현이고, 동시대 신학자들이 신의 통치를 가리킬 때 쓰던 용어다. 뉴턴은 자기 자연철학의 결론을 자기 신학의 용어로 닫은 것이다. 두 영역이 한 사람 안에서 어떻게 결합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서다.

그러나 이 결합이 18세기에 들어오면서 갈라졌다. 이신론자들은 뉴턴을 자기들 편으로 끌고 갔다. 시계를 만들어 두고 떠나버린 신, 더 이상 개입하지 않는 신. 자연 법칙은 자동으로 굴러간다는 그림이 만들어졌다. 19~20세기 과학교육은 그 그림을 물려받았다. 학교에서 배우는 뉴턴은 신 없는 뉴턴이 됐다. 1차 자료에서 한 단어, 한 페이지가 잘려 나가면 한 사람의 사상 전체가 다른 모양으로 도착한다.

1차 자료가 다른 모양을 보여준다. Newton Project가 디지털화한 뉴턴의 신학 원고가 약 200만 단어 분량이다. 그가 평생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주석한 흔적이 거기 있다. 시계를 만들고 떠나는 신이 아니라, 매 순간 우주를 떠받치고 있는 신이었다. 표준 평전을 쓴 Westfall도 정직하게 적는다. 뉴턴은 깊이 신앙적이되, 정통과는 갈라진 자리에 있었다. 삼위일체를 사적으로 부정한 아리우스파 경향이 있었다. 그는 정통 교의를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신을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 사이의 어디쯤에서 평생을 보냈다.

표면 아래로 한 겹 들어가면, 뉴턴의 신학적 위치가 단순한 부록이 아니었음이 보인다. 그가 Pantokrator를 강조한 이유는 정통 신학의 중심에 있던 삼위일체보다 신의 통치성을 더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에게 신은 위격이 아니라 통치자였다. 자연의 법칙은 그 통치의 흔적이었다. 그래서 자연철학과 신학이 분리될 수 없었다.

이 자료의 형식적 아름다움도 짚을 만하다. 책의 시작은 운동의 세 법칙으로 열린다. 절대공간·절대시간 정의로 시작해 만유인력의 수식으로 정점에 이른다. 그리고 책의 끝에서 General Scholium이 그 모든 수학적 절차를 한 단어로 닫는다 — Pantokrator. 형식적으로 책은 수학에서 시작해 신학으로 닫힌다. 그러나 단순히 두 영역을 병치한 것이 아니라, 수학이 신학으로 흘러들어가는 구조다. 자연의 질서가 그 자체로 통치자의 흔적이라는 그림이다.

여기서 동양 사상과의 교차가 보인다. 동양 성리학의 '理(이)'라는 한 글자는 자연의 법칙이면서 동시에 도덕의 원리를 가리킨다. 둘이 분리되지 않는다. 뉴턴의 자연철학과 닮은 구조다. 16세기 서양에서 자연 법칙과 신의 통치가 한 단어 안에 살았듯이, 동양에서는 자연의 결과 인간의 결이 '理'라는 한 글자 안에 살았다. 두 전통이 다른 언어로 같은 자리를 짚은 셈이다.

이 자료가 품은 지혜는 분리에 대한 경계다. 한 사상가의 작업을 후대가 자기 필요에 맞게 잘라 사용할 때, 1차 자료가 가진 본래 모양이 사라진다. 뉴턴의 자연철학에서 신학을 잘라내고 사용하는 18세기의 결정이 이후 300년의 과학과 종교의 분리를 결정짓는 자리가 됐다. 한 페이지를 빼고 책을 읽으면 그 책이 다른 책이 된다.

다양한 갈래로 이 자료가 열린다. 과학사에서는 17세기 자연철학과 신학의 결합 사례다. 종교학에서는 비정통 신학자가 어떻게 자연 안에서 신을 본격적으로 다뤘는지의 사례다. 인식론에서는 자연의 질서가 어떤 종류의 인식 대상인가에 대한 17세기적 답이 된다. 한 페이지가 세 분야로 갈라진다.

본질을 한 줄로 정리하면, 뉴턴은 자연 법칙과 신의 통치가 분리되지 않는 자리에서 작업했고, 그의 책 형식 자체가 그 결합을 담고 있었다. 후대가 그 한 페이지를 잘라내면서 한 사상이 다른 사상으로 도착했다.

이 자료는 독자에게 질문을 남긴다. 당신이 알고 있는 한 사상가의 사상에서, 후대가 잘라낸 한 페이지가 있는가. 1차 자료에 직접 들어가서 그 한 페이지를 회복할 때 그 사상이 어떻게 다르게 도착하는가.

이 정독이 풀지 못한 자리가 있다. 뉴턴이 삼위일체를 부정하면서도 그리스도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인간으로 격하시키지도 않았고, 정통 교의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그 사이의 어디쯤이었다. 다음 정독은 Newton 신학 원고 'Yahuda MS 15'로 이어진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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