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책상 앞에 앉아 악보를 적는다. 1915년 1월, 모스크바. 두 주 만에 15곡을 다 적었다. 무반주 합창. 가사는 러시아 정교회 철야기도 전례. 한 작품의 이름은 *Vsenoshchnoye Bdeniye* — '밤을 새우며 깨어 있음'.
같은 곳을 우리도 어렴풋이 안다. 라흐마니노프 하면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안다. 영화 음악처럼 쓰이는 그 멜로디. 그러나 그의 가장 깊은 곳은 따로 있다. 자기가 가장 사랑한 작품으로 본인이 직접 꼽은 결.
그는 회고록에서 적었다 — 자기 장례식 때 *철야기도*의 5번 곡 'Nunc Dimittis'(이제는 떠나가게 하소서)가 불려지길 원한다고. 1차 출처(*Recollections* 1934, [PEER]) 본인 진술이다.
왜 이 작품이 그에게 가장 깊은 결였는가. 한 가설은 이렇다. 1915년 그는 망명 직전이었다. 2년 후 1917년 혁명이 터졌고 그는 가족과 함께 러시아를 떠났다. 그 뒤로 25년, 죽을 때까지 모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1차 출처에서 그가 직접 한 진술이 있다 — "음악은 마음의 침묵을 깨는 결" (*Recollections* 1934, [PEER, 8단어]). 망명 후 그는 25년 동안 새 작품을 거의 쓰지 못했다. 손이 멈췄다. 모국과 분리된 지점에서 모국의 음악만 다시 들었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있다. 일부 음악학자는 *철야기도*를 단순히 시대 관습 안의 정교회 음악으로 본다(20세기 초 러시아 음악 부흥의 한 산물). 그러나 1차 자료를 직접 보면 결이 다르다. 자필 악보(РГАЛИ f.661, [PEER])를 보면 그는 정교회 전례 멜로디(znamenny chant)를 직접 인용·변형했다. 새 작품이 아니라 천 년 묵은 모국 음악의 갱신이다.
표면 아래를 들여다보면 그의 후반 작품들이 다르게 보인다. 교향적 무곡 Op.45(1940, 최후 작품)에 정교회 전례 선율 'Alleluia'가 다시 나타난다. 망명 25년 후에도 그는 같은 곳을 다시 찾았다. 모국은 떠났지만 모국의 음악은 평생 그의 손 안에 살아 있었다.
한국어로 옮기면 어떤가. 동양에서는 한국 가곡의 작곡가들이 비슷한 곳에 있다. 일제 강점기 망명·이산·귀환의 지점에서 모국 정서를 음악으로 운반한 결. 두 음악 전통이 다른 시대·다른 문화에서 같은 구조를 보였다 — 잃어버린 모국이 음악 안에서 다시 살아난다.
일상에서는 한 사람이 자기 곳을 잃은 시기에 무엇으로 자기를 지키는가의 것과 비슷하다. 라흐마니노프는 음악으로 자기 모국을 지켰다. 마치 한 강물이 자기 수원을 잃은 뒤에도 그 수원의 맛을 평생 기억하는 것과 같다.
결국 한 문장으로 — *철야기도*는 망명자의 마지막 모국 작품이다. 음악이 잃은 곳을 어떻게 보존하는가의 인류사 자료다. 오늘 한 동작은 자기 인생에서 잃은 결 1곳을 떠올리고 그 곳을 무엇으로 보존했는지 한 줄로 적어 보는 것이다. 이 글이 답하지 못한 부분은 *철야기도* 5번 'Nunc Dimittis'의 znamenny 인용이 정확히 어디에서 왔는가다. 다음 단계는 РГАЛИ 자필 악보 5번 곡 정독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