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13장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maqor)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고(13:1), 우상의 이름과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영이 땅에서 끊겨 선지자 노릇이 부끄러운 일이 되어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부인하는(13:5) 정결의 무대에서,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로 목자를 치매 양이 흩어지고(13:7), 온 땅의 삼분의 이가 멸망하고 남은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고 금 같이 시험하여 "이는 내 백성이라"와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는 언약 공식이 되살아나는(13:8-9) — 씻는 샘과 맞은 목자와 불로 연단된 삼분의 일을 품은 스가랴서의 한 장.
단계 1 무대 장치, 배경, 소품, 소재 찾기 시뮬레이션 보기 →
본문을 연극 무대처럼 상상한다. 어떤 공간인가 · 소품은 무엇인가 · 배경 요소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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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_id: ZEC-013
book: 스가랴
book_en: Zechariah
chapter: 13
bible_block: 선지서
canon: 구약
genre: 예언 담화(정결 선언·거짓 선지자 축출·목자 치심과 흩음·불로 연단하는 삼분의 일)
language: 히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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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brew_terms: [maqor, chatat, niddah, atzabbim, ruach_hatumah, adderet_sear, oved_adamah, makkot, bein_yadeykha, cherev, roi, gever_amiti, amit, putzun, tzoarim, shnei_pi, shelishit, esh, tzaraf, kesef, bachan, zahav, ammi]
aramaic_term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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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xx_divergences: ["LXX는 13:5 '나는 농부라(사람이 나를 종으로 삼았노라)'의 히브리어 후반부 '아담이 어려서부터 나를 사서 부렸다(hiqnani)'의 난해한 표현을 다소 평이하게 옮겨, 원문의 애매함이 역본에서 매끄러워짐 — 본문 확정 아님, 배경", "LXX는 13:7 '내 짝 된 자(gever amiti)'의 amit(동료·짝)을 '동료 시민' 계열로 옮겨, '나와 나란한 자'라는 친밀함의 결이 사본에 따라 미세하게 갈림 — 배경", "13:6 '네 두 팔 사이의 상처'의 히브리어 makkot(맞은 자국)을 두고 우상숭배 자해의 흔적이냐 다른 상처냐가 역본·주석 흐름에 따라 갈림 — 본문 확정 아님, 배경"]
ane_refs: ["거짓 선지자가 '털옷(adderet sear)'을 입어 선지자임을 표시하던 관습(왕하 1:8 엘리야, 슥 13:4)이 배경 — 정결의 날에는 그 옷을 벗어 속이지 않는다", "몸에 칼자국을 내는 자해가 고대 근동 이교 예배의 흔한 광란 표지(왕상 18:28 바알 선지자)였던 배경 — 13:6의 '상처'가 그 그림자를 스칠 수 있음", "은과 금을 도가니 불에 녹여 불순물을 걷어 내는 야금(연단) 이미지가 성경 전반의 시험·정련 은유의 배경(말 3:2-3, 벧전 1:7)"]
rabbinic_refs: ["후대 전통은 13:7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두고 그 목자가 누구인지 오래 논하나, 13장 본문은 그 정체를 이름으로 밝히지 않고 '나와 나란한 자'라는 관계어만 둔다 — 본문 확정 아님, 수용사 배경"]
literary_devices: [bayom_hahu_refrain, fountain_opened_image, name_cutting_off, prophet_denial_speech, hairy_mantle_motif, struck_shepherd_scattered_sheep, refiners_fire_metaphor, third_remnant_fraction, covenant_formula_restored, question_and_answer_dialogue]
repeated_words: ["그 날에(bayom hahu — 1·2·4절, 정결의 날을 세 번 여는 후렴)", "끊다/제거하다(karat — 2절 두 번, 우상의 이름과 선지자·영을 끊음)", "선지자(navi — 2·3·4·5절, 부끄러움이 되어 부인되는 이름)", "치다(nakah — 7절 두 번, 목자를 치매 양이 흩어짐)", "삼분의(pi/shelishit — 8·9절, 이/일로 나뉘는 온 땅)", "부르다·대답하다(qara/anah — 9절, 내 이름을 부르니 내가 들으리라)"]
cross_refs: ["슥 12:10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애통하리라 — 12장의 애통이 13:1 씻는 샘으로 흘러듦)", "마 26:31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 예수께서 겟세마네에서 13:7을 자신에게 적용해 인용)", "왕하 1:8 / 마 3:4 (털옷 입은 선지자 — 13:4가 벗기는 거짓의 표지)", "왕상 18:28 (바알 선지자가 몸에 상하게 함 — 13:6 상처의 이교 배경)", "말 3:2-3 (그가 은을 연단하는 자 같이 앉아 — 13:9 불로 연단하는 삼분의 일과 겹치는 정련 이미지)", "벧전 1:7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귀한 믿음의 시험 — 13:9 금 같이 시험함의 신약 반향)", "레 26:12 / 렘 31:33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 13:9가 되살리는 언약 공식)"]
facilitator: 성령일_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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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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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13장 — 관찰 시뮬레이션 raw transcript
⚠️ 본 transcript는 SBM 관찰 단계 시뮬레이션용 가상 대화입니다. 실존 인물이 아닌 가상 페르소나 6인과 진행자의 시연이며, 외부 공개용이 아닙니다.
오프닝
성령일 선교사: 스가랴 13장입니다. 아홉 절이지요. 앞 장에서 우리는 스가랴 12장 —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온 땅이 각 족속대로 애통하던, 슬픔이 강물처럼 흐르던 장 — 을 지나왔습니다. 그런데 13장은 그 애통 바로 다음에 첫 절이 "그 날에… 샘이 열리리라"로 열립니다. 슬픔이 흘러들어 씻는 샘이 됩니다. 그러고는 무대가 여러 번 바뀝니다 — 씻는 샘에서, 거짓 선지자가 부인당하는 광장으로, 목자가 칼에 맞고 양이 흩어지는 들판으로, 삼분의 일이 불에 던져지는 도가니로. 오늘도 해석은 미루고, 본문이 보여 주는 것만 따라가 봅시다. 낭독하고 침묵을 두겠습니다.
(본문 낭독 13:1~9, 약 3분)
(침묵 약 1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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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 무대·배경·소품·소재
성령일 선교사: 무대와 소품이 보이시는 대로 나눠 주세요.
P04 최현국: 무대가 계속 옮겨 다녀요. 1절은 물의 무대예요 —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열린 샘 하나가 첫 소품이에요. 그런데 2절부터 무대가 바뀌어요 — 이번엔 땅에서 무언가를 끊어 내는 정결의 무대예요. 우상의 이름을 끊고, 선지자와 더러운 영을 땅에서 떠나게 해요. 3~5절은 광장 같아요 — 거짓 선지자가 지목되고, 그의 부모가 그를 찌르고, 선지자들이 털옷을 벗고 "나는 선지자가 아니라" 부인하는 장면이에요. 7절은 갑자기 들판으로 가요 — 칼이 깨어나 목자를 치고 양이 흩어져요. 8~9절은 도가니예요 — 삼분의 일이 불에 던져져 연단돼요. 한 장 안에 샘·광장·들판·도가니 네 무대가 이어져요.
P05 김미영: 소품으로 '털옷'이 눈에 걸렸어요. 4절 "선지자들이… 다시는 털옷을 입고 속이지 아니할 것이며." 옛적에 선지자임을 표시하던 그 겉옷이(엘리야가 털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왕하 1:8이 떠올라요) 여기선 벗어야 할 속임의 소품이 돼요. 그리고 6절엔 '상처'라는 소품이 있어요 — "네 두 팔 사이에 있는 상처는 어찌 됨이냐." 옷을 벗기니 몸에 자국이 드러나요. 정결의 날에는 겉옷도 벗겨지고 살갗의 흔적까지 물어지는, 감출 수 없는 무대예요.
P02 이진우: 소재로 '칼'을 짚고 싶어요. 7절에 갑자기 칼이 등장해요 —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그런데 이 칼이 향하는 대상이 놀라워요. 원수의 목이 아니라 "내 목자, 내 짝 된 자"예요 — 하나님이 '나와 나란한 자'라고 부르시는 이. 그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져요. 앞의 무대들에서 끊기던 건 우상과 거짓 선지자였는데, 여기선 하나님 자신의 목자가 칼을 받아요. 소재 하나가 무대의 결을 완전히 바꿔요.
P07 오지혜: 소재를 늘어놓아 볼게요 — 열린 샘, 죄, 더러움, 우상의 이름, 거짓 선지자, 더러운 영, 부모의 찌름, 털옷, 농부, 어릴 적 종, 두 팔 사이의 상처, 깨어난 칼, 맞은 목자, 흩어진 양, 작은 자들, 삼분의 이, 삼분의 일, 불, 은, 금. 앞쪽 소재(1~6절)는 씻고 끊고 벗기는 것들이에요 — 정결. 가운데 소재(7절)는 치고 흩는 것이에요. 뒤쪽 소재(8~9절)는 태우고 연단하고 남기는 것들이에요 — 삼분의 이는 멸하고 삼분의 일은 불을 통과해요. 씻김에서 흩음으로, 다시 연단으로 소재가 옮겨 가요.
P01 한나래: 저는 12장과 13장 사이의 이음매가 배경으로 마음에 남았어요. 12장 끝은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온 땅이 애통하는 장면이에요 — 슬픔이 가득해요. 그런데 13장 1절이 바로 "그 날에… 샘이 열리리라"로 이어져요. 애통이 채 그치기도 전에, 그 슬픔이 흘러들어 씻는 샘이 돼요. 무대에 막간이 없어요. 우는 자리가 곧 씻기는 자리예요. 그 붙어 있음이 배경으로 크게 다가왔어요.
P11 나경아: 어휘 몇 개만요. 1절 maqor(מָקוֹר) — 샘·근원. niddah(נִדָּה) — 더러움·부정. 2절 atzabbim(עֲצַבִּים) — 우상. 4절 adderet se'ar(אַדֶּרֶת שֵׂעָר) — 털옷. 5절 oved adamah(עֹבֵד אֲדָמָה) — 땅을 가는 자, 농부. 6절 makkot(מַכּוֹת) — 상처·맞은 자국. 7절 gever amiti(גֶּבֶר עֲמִיתִי) — 내 짝 된 자, amit(עָמִית)은 동료·나란한 자. tzoarim(צֹעֲרִים) — 작은 자들. 8~9절 shelishit(שְׁלִשִׁית) — 삼분의 일, tzaraf(צָרַף) — 연단하다, bachan(בָּחַן) — 시험하다. 9절 ammi(עַמִּי) — 내 백성. 배경만요.
성령일 선교사: 샘·광장·들판·도가니로 옮겨 다니는 무대, 벗겨지는 털옷과 드러나는 상처, 원수 아닌 '내 짝 된 자'를 향하는 칼, 씻김에서 흩음으로 다시 연단으로 옮겨 가는 소재, 그리고 12장 애통과 13장 샘 사이의 막간 없는 이음. 그대로 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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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첫 느낌·분위기
성령일 선교사: 어떤 공기였는지요.
P01 한나래: 처음엔 씻김의 시원함이 있었어요. 1절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리리라" — 애통 뒤에 열리는 샘이라니, 눈물이 마르지 않은 자리에 맑은 물이 솟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곧 공기가 서늘해졌어요. 2~3절에서 정결이 얼마나 철저한지요 — 우상의 이름을 끊고, 거짓 선지자를 그의 부모가 찌르고, 6절엔 몸의 상처까지 드러나요. 씻김이 부드럽기만 한 게 아니라, 감춘 것을 끝까지 파내는 정결이에요. 시원함과 서늘함이 함께 있었어요.
P07 오지혜: 저는 5절의 '부인'이 마음을 눌렀어요. 선지자였던 자가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내가 어려서부터 사람의 종이 되었노라" 해요. 선지자라는 이름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 되었으면, 자기가 선지자였음을 극구 부인하고 농부라고 둘러댈까요. 한때 존귀했던 이름이 숨겨야 할 낙인이 된 거예요. 그 부인의 목소리가 어쩐지 시렸어요. 정결의 날이 오면 거짓은 이름 자체를 감추게 되는구나 — 그 공기가 무거웠어요.
P04 최현국: 연출로는 7절에서 화면이 확 바뀌는 게 강렬했어요. 앞까지는 정결의 정적인 장면들 — 씻고, 끊고, 부인하고 — 이었는데, 7절에서 갑자기 칼이 깨어나요. "칼아 깨어서 내 목자를 치라." 카메라가 목자 하나에 붙었다가, 그가 쓰러지자 양 떼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넓은 화면으로 확 물러나요. 정적에서 격동으로, 한 사람에서 흩어진 무리로. 그리고 8절에서 또 넓어져요 — "온 땅에서" 삼분의 이가 멸하고 삼분의 일이 남아요. 목자 한 사람의 죽음에서 온 땅의 운명으로 화면이 열려요.
P02 이진우: 구조가 주는 긴장이 있어요. 13장은 정결(1~6절) → 목자 치심과 흩음(7절) → 연단된 삼분의 일(8~9절)로 흘러요. 그런데 앞의 정결이 '거짓을 끊는' 것이라면, 7절은 '내 목자를 치는' 것이에요. 방향이 안 맞는 것 같아요 — 왜 거짓을 다 끊어 낸 다음에, 하나님 자신의 목자가 칼을 받나요. 그 어긋남이 긴장을 만들어요. 그리고 8~9절은 남은 자에게도 관대하지 않아요 — 삼분의 일마저 불을 통과해야 해요. 씻고, 치고, 태우는 세 국면이 점점 강해지는데, 그 끝이 뜻밖에도 "내 백성이라"는 회복이에요.
P05 김미영: 감각으로는 '불'이 먼저 왔어요. 9절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남았다고 끝이 아니에요. 남은 자도 도가니에 들어가요. 그런데 그 불이 태워 없애는 불이 아니라 연단하는 불이에요 — 은에서 찌꺼기를 걷어 내고 금을 시험하는 불. 뜨거운데, 그 뜨거움이 파괴가 아니라 정련이라는 걸 느끼는 순간 결이 달라졌어요. 그리고 그 불을 통과한 자리에서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 나와요. 불의 끝에 언약의 말이 있어요.
P11 나경아: 분위기로 하나만요. 7절 "내 짝 된 자"의 히브리어 gever amiti에서 amit(עָמִית)은 레위기에서 "네 이웃·동료"를 가리킬 때 쓰는, 나란히 선 자를 뜻하는 말이에요. 하나님이 그 목자를 "나와 나란한 자"라고 부르시는 거예요. 그런 친밀한 자를 치라 하시니, 7절의 칼이 단순한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 편의 아픔이 밴 칼처럼 무겁게 들려요. 다만 그 친밀함의 깊이가 본문이 의도한 것인지 어휘가 실어 나른 것인지는 한쪽으로 못 잠그므로 거기까지만 같이 봐요. 배경 자료로만요.
성령일 선교사: 애통 뒤에 열리는 샘의 시원함과 감춘 것을 파내는 정결의 서늘함, 선지자 이름을 부인하는 시린 목소리, 정적에서 격동으로 바뀌는 7절의 칼, 태우지 않고 연단하는 불, amit의 무거운 울림. 그대로 두지요.
(침묵 약 30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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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시작과 끝
성령일 선교사: 시작과 끝을 함께 보겠습니다.
P02 이진우: 1절 시작: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9절 끝: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시작은 '씻는 샘이 열림'으로 열리고, 끝은 '부름과 응답, 백성과 하나님의 언약'으로 닫혀요. 밖에서 부어 씻는 물로 시작해, 안에서 부르고 응답하는 관계로 끝나요. 씻김의 무대가, 언약의 무대로 옮겨 가요.
P01 한나래: 무게 중심이 옮겨 가요. 시작은 '더러움'이에요 — 씻어야 할 죄와 부정. 끝은 '내 백성·내 하나님'이에요 — 회복된 언약의 관계. 오염에서 언약으로 옮겨 가요. 그런데 그 사이 7절의 "내 목자를 치라"와 8절의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가 가장 어두운 골짜기예요 — 흩어지고, 삼분의 이가 사라져요. 그 어둠을 통과한 삼분의 일이 9절에서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불러요. 흩어지고 태워진 그 끝에서 언약이 회복돼요.
P04 최현국: 시작과 끝 사이에서 무대가 여러 번 열려요. 처음엔 샘 하나에 좁게 붙어요 — 열린 근원. 그러다 2~6절에서 광장으로 넓어져요 — 온 땅에서 우상과 거짓 선지자가 끊겨요. 7절에서 들판으로 — 목자가 쓰러지고 양이 사방으로 흩어져요. 8절에서 온 땅으로 — 삼분의 이와 삼분의 일. 9절에서 다시 좁아져요 — 불 속의 삼분의 일, 그리고 서로 부르고 응답하는 둘. 샘 → 광장 → 들판 → 온 땅 → 도가니 속 언약, 이렇게 넓어졌다 다시 한 관계로 좁혀지며 닫혀요.
P07 오지혜: 시작의 '샘'과 끝의 '불'이 짝을 이루는 게 마음에 남아요. 앞은 물로 씻어요 — 밖에서 부어 죄와 더러움을 제거하는 정결. 끝은 불로 연단해요 — 안에서 태워 찌꺼기를 걷어 내는 정련. 물과 불, 두 정결이 한 장의 양 끝에 서 있어요. 씻고도 남은 것을 불이 마저 연단해요. 그 둘이 서로를 비춰요. 다만 물과 불의 관계를 본문이 직접 잇지는 않으니 거기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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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단계] 등장인물·사물·상황·사상
성령일 선교사: 등장하는 인물과 사상을 나눠 주세요.
P04 최현국: 인물 목록부터요. 여호와 — 샘을 열고, 우상과 거짓 선지자를 끊고, 칼에게 목자를 치라 명하고, 삼분의 일을 불로 연단하며 "내 백성이라" 부르는 분.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 — 씻는 샘이 열리는 대상(1절). 거짓 선지자 — 지목되어 부모에게 찔리고, 털옷을 벗고 "나는 농부라" 부인하는 자(3~5절). 그를 찌르는 부모 — 자기 아들이라도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 이(3절). "내 목자, 내 짝 된 자" — 칼을 받아 쓰러지고 그로 인해 양이 흩어지는 이(7절). 흩어진 양과 '작은 자들'(7절). 그리고 삼분의 이(멸망)와 삼분의 일(연단되어 남는 자, 8~9절). 정결의 대상에서, 맞은 목자와 연단된 남은 자로 인물이 좁혀져요.
P02 이진우: 상황의 뼈대는 '그 날에'의 정결과 그 너머예요. "그 날에"(1·2·4절)가 세 번 반복되며 무대를 열어요 — 샘이 열리는 그 날, 우상과 거짓 선지자가 끊기는 그 날, 선지자가 부끄러워 부인하는 그 날. 그리고 7절에서 후렴 없이 칼이 깨어나고, 8~9절에서 온 땅이 삼분되어 삼분의 일만 불을 통과해요. 씻고 끊는 정결에서, 목자를 치는 흩음을 지나, 남은 자를 연단하는 도가니로 상황이 흘러요.
P07 오지혜: 사상의 중심은 9절의 언약 공식이라고 느꼈어요. 온 장이 씻고, 끊고, 치고, 태우는데 — 그 모든 정결과 심판의 끝이 "이는 내 백성이라"와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예요. 이건 레위기 26장과 예레미야 31장의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는 언약 공식이 되살아난 거예요. 씻김도 흩음도 연단도, 이 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것처럼 수렴해요. 파괴가 목적이 아니라 언약이 목적이에요. 다만 그 신학적 무게는 우리 관찰의 몫이 아니고, 본문이 그 말로 닫힌다는 사실만.
P01 한나래: 7절에서 멈췄어요.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하나님이 원수가 아니라 '나와 나란한 자'를 치라 하세요. 그리고 목자가 맞으니 양이 흩어져요. 그런데 그 바로 뒤에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하세요 — 치는 손과 지키는 손이 한 절 안에 함께 있어요. 흩으시면서 동시에 작은 자들 위에 손을 얹으세요. 이 어긋남 같은 겹침을 13장은 직접 풀지 않아요. 그 결을 단정하지 않고 두고 싶어요.
P05 김미영: 사물로는 8절의 '분수'가 마음에 걸렸어요. "이 온 땅에서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 남는 자가 다수가 아니에요 — 삼분의 이가 멸하고, 삼분의 일만 남아요. 그리고 그 삼분의 일마저 그냥 남는 게 아니라 불에 던져져요. 왜 삼분의 이인지, 왜 남은 자에게도 불이 필요한지 — 13장 본문 안에서는 그 셈의 까닭을 잘라 말하지 않아요. 남김이 이토록 좁고, 남은 자에게도 도가니가 있다는 사실만 담담히 놓여 있어요.
P11 나경아: 사상 쪽 어휘 하나요. 9절의 tzaraf(צָרַף, 연단하다)와 bachan(בָּחַן, 시험하다). 둘 다 야금·정련의 말이에요 — 은을 녹여 찌꺼기를 걷고(tzaraf), 금을 불에 대어 순도를 확인해요(bachan). 이 어휘가 말라기 3장의 "은을 연단하는 자 같이 앉아"와, 벧전 1장의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귀한 믿음"과 같은 결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건, 그 불의 결과가 파괴가 아니라 '부름과 응답'이라는 거예요 —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으리라." 연단의 끝이 관계예요. 다만 그 정련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 깊이를 다 푸는 건 묵상의 몫이고, 여기선 어휘 결만 — 배경 관찰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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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단계] 장면 컷 분절
성령일 선교사: 장면을 컷으로 나눠 보시지요.
P04 최현국: 다섯 컷입니다. 열린 샘 — 우상과 영을 끊음 — 부인하는 거짓 선지자 — 맞은 목자와 흩어진 양 — 연단된 삼분의 일로 끊었어요.
- 컷 1 (1절): 열린 샘.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12장의 애통 다음에 씻는 근원이 솟는다.
- 컷 2 (2절): 끊음.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영을 이 땅에서 떠나게 하리라." 이름과 영이 땅에서 제거된다.
- 컷 3 (3~6절): 부인하는 선지자. 거짓 예언하는 자를 그 부모가 찌르고, 선지자들이 부끄러워 털옷을 벗으며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부인한다. "네 두 팔 사이의 상처는 어찌 됨이냐" —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 컷 4 (7절): 맞은 목자.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 컷 5 (8~9절): 연단된 삼분의 일.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남으리니,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하리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으리라 — '이는 내 백성이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P02 이진우: 컷 내부에 작은 흐름이 하나 더 있어요. 컷 1~3(1~6절)은 '거짓과 더러움을 제거하는' 정결의 계단이에요 — 씻고, 끊고, 벗기고 부인시켜요. 컷 4(7절)는 그 흐름을 끊고 '내 목자를 치는' 뜻밖의 전환이에요 — 정결의 대상이 거짓에서 하나님 자신의 목자로 옮겨요. 컷 5(8~9절)는 그 흩음의 끝에서 남은 삼분의 일을 마저 연단해 언약으로 데려가요. "그 날에"가 컷 1~3을 가로지르고, "치다"가 컷 4를 지배하고, "부르다·대답하다"가 컷 5에 모여요. 핵심 단어들이 컷을 가로질러 반복되며 13장이 흩어진 장면 나열이 아니라 정결에서 흩음을 지나 언약으로 향한 한 흐름이라는 표지를 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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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단계] 의문·발견·정보
성령일 선교사: 의문이나 발견을 나눠 주세요.
P11 나경아: 원어 카드를요. 1절 maqor(מָקוֹר) — 샘·근원. chatat(חַטָּאת) — 죄. niddah(נִדָּה) — 더러움·부정. 2절 atzabbim(עֲצַבִּים) — 우상. ruach hatum'ah(רוּחַ הַטֻּמְאָה) — 더러운 영. 4절 adderet se'ar(אַדֶּרֶת שֵׂעָר) — 털옷. 5절 oved adamah(עֹבֵד אֲדָמָה) — 농부. 6절 makkot(מַכּוֹת) — 상처. 7절 gever amiti(גֶּבֶר עֲמִיתִי) — 내 짝 된 자, amit(עָמִית) 동료·나란한 자. tzoarim(צֹעֲרִים) — 작은 자들. 8절 shelishit(שְׁלִשִׁית) — 삼분의 일. 9절 tzaraf(צָרַף) — 연단하다, bachan(בָּחַן) — 시험하다, ammi(עַמִּי) — 내 백성. 배경만요.
P02 이진우: 발견 — '물과 불'의 대칭이에요. 장의 시작(1절)은 물이에요 — 씻는 샘. 장의 끝(9절)은 불이에요 — 연단하는 도가니. 밖에서 부어 죄를 씻는 정결과, 안에서 태워 찌꺼기를 걷는 정련이 한 장의 양 끝에 놓여요. 그런데 그 대칭이 서늘한 건, 씻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 씻고도 삼분의 일은 불을 통과해야 해요. 정결이 물 한 번으로 완결되지 않고, 흩음과 불을 거쳐야 언약에 이르러요. 해석은 미해결로 두고요.
P07 오지혜: 발견 — 7절이 신약에서 인용된다는 거예요. 예수께서 겟세마네로 가시던 밤, 마태복음 26장 31절에서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를 끌어와 자신에게 적용하세요. 13장 7절의 그 맞은 목자를, 예수께서 잡히시던 그 밤에 자기 이야기로 읽으신 거예요. 그러니까 이 절이 한 번 선포되고 마는 게 아니라, 후대에 한 사건 속에서 다시 살아나요. 다만 그 인용의 신학적 확장은 우리 관찰의 몫이 아니고요. 본문이 그 씨앗을 품고 있다는 사실만.
P01 한나래: 의문이에요. 7절 안에서 "목자를 치라"와 "작은 자들 위에 내 손을 드리우리라"가 어떻게 한 문장에 같이 서는지 모르겠어요. 치는 손과 지키는 손이에요. 목자를 쳐서 양을 흩으시는 그 동일한 절에서, 작은 자들 위에는 손을 얹어 지키신다 하세요. 흩음과 보호가 마주 봐요. 13장 안에서 그 사이의 논리를 직접 풀지 않아요. 보류하는 대목으로 두고 싶어요.
P05 김미영: 의문 하나 더요. 6절 "네 두 팔 사이에 있는 상처는 어찌 됨이냐" —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이 문답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르겠어요. 어떤 이는 이걸 우상 예배 때 몸에 낸 자해의 흔적을 숨기려는 변명으로 읽고(왕상 18:28 바알 선지자가 떠올라요), 어떤 이는 다른 상처로 봐요. 그리고 하필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는 표현이 왜 나오는지. 1장 아니 13장 본문 안에서는 그 상처의 정체를 밝히지 않아요. 그 어조를 단정하지 않고 보존하고 싶어요.
P04 최현국: 배경이에요. 4절의 "털옷을 입고 속이지 아니하리라"가 왕하 1장 8절, 마 3장 4절과 이어져요 — 엘리야가 털이 많은 사람이었고, 세례 요한도 낙타 털옷을 입었어요. 털옷이 선지자의 표지였던 거예요. 그런데 13장에서는 그 표지를 벗어야 해요 — 참 선지자 노릇마저 부끄러워질 만큼 예언이 거짓으로 더럽혀진 시대라는 배경이 겹쳐요. 다만 참과 거짓 선지자를 어떻게 가를지는 본문이 스스로 보여 줄 일이고요. 배경으로만요.
성령일 선교사: 물과 불의 대칭, 겟세마네에서 되살아나는 7절, 치는 손과 지키는 손의 미해결 긴장, 정체를 밝히지 않는 6절의 상처, 벗겨지는 털옷의 배경. 그대로 두지요. 답이 급하지 않습니다.
(침묵 약 40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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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단계] 동영상 — 컷 이어 붙이기
성령일 선교사: 본문이 동영상처럼 움직인다면 무엇이 보이시나요?
P04 최현국: 앞 장의 애통이 아직 화면에 남아 있습니다 — 사람들이 찔린 그를 바라보며 통곡하던 밤. 그 눈물 위로 "그 날에"라는 자막이 뜨고, 마른 땅에서 샘 하나가 솟습니다 — 죄와 더러움을 씻는 근원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을 향해 열립니다. 물이 흐르자 화면이 넓어집니다. 땅 곳곳에서 우상의 이름이 지워지고,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영이 걷혀 나갑니다. 한 광장에서, 거짓을 예언하던 자를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붙잡아 찌릅니다. 선지자였던 자들이 하나둘 털옷을 벗어 던지며 손사래를 칩니다 —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어려서부터 종으로 땅을 갈았을 뿐이라." 누군가 그의 팔을 붙들고 묻습니다 — "이 두 팔 사이 상처는 무엇이냐." 그가 눈을 피하며 답합니다 — "친구의 집에서 받은 것이라." 이름이 부끄러움이 된 시대입니다. 그때 화면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한 음성이 칼을 부릅니다 —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칼이 목자를 치자 그가 쓰러지고, 카메라가 확 물러나 사방으로 흩어지는 양 떼를 비춥니다. 그런데 그 흩어짐 가운데, 작은 자들 위로 한 손이 드리워집니다 — 치는 손과 지키는 손이 한 화면에 겹칩니다. 이어 화면이 온 땅으로 열립니다 — 삼분의 이가 스러지고, 삼분의 일이 남습니다. 그 남은 삼분의 일마저 불 속으로 들어갑니다. 도가니에서 은이 녹고 찌꺼기가 걷히고 금이 시험됩니다. 불꽃 사이에서 목소리가 올라옵니다 — "여호와여." 그러자 응답이 내려옵니다 — "이는 내 백성이라." 다시 올라옵니다 —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부름과 응답이 불 위에서 만납니다. 암전.
성령일 선교사: 애통 위로 솟는 씻는 샘에서 시작해, 우상과 거짓 선지자를 끊고 이름마저 부인시키는 정결을 지나, 뜻밖에 '내 짝 된 자'를 치매 양이 흩어지고, 그 흩음 속에 지키는 손이 겹치며, 남은 삼분의 일이 불을 통과해 "내 백성"과 "내 하나님"이 서로 부르는 언약으로 닫히는 흐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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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단계] 초벌 제목·부제
P01 한나래: "그 날에 열리는 샘 — 애통이 흘러들어 씻는 근원이 되다"
P02 이진우: "물로 씻고 불로 연단하여 — 한 장의 두 정결"
P04 최현국: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 이름이 부끄러움이 된 날"
P05 김미영: "칼아 깨어서 내 목자를 치라 — 흩는 손과 지키는 손이 한 절에"
P07 오지혜: "삼분의 일을 불에 던져 — 남은 자도 통과하는 도가니, 그 끝의 언약"
P11 나경아: "maqor · gever amiti · shelishit — 샘·내 짝 된 자·삼분의 일"
부제 제안: "12장의 애통 바로 다음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maqor)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고(13:1), 우상의 이름과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영이 땅에서 끊겨 선지자 노릇이 부끄러운 일이 되어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부인하는 정결의 무대에서,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로 목자를 치매 양이 흩어지되 작은 자들 위에는 손을 드리우시고(13:7), 온 땅의 삼분의 이가 멸망하고 남은 삼분의 일을 불로 은 같이 연단하고 금 같이 시험하여 '이는 내 백성이라'와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는 언약 공식을 되살리시는 스가랴의 정결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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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단계] 기도·내면 떠오름
성령일 선교사: 애통의 자리에 씻는 샘을 여시고, 거짓을 끝까지 끊으시며, 뜻밖에 당신의 목자를 치게 하시고, 남은 자마저 불로 연단해 "내 백성"이라 부르시는 그 음성 곁으로 들어가, 관찰로 알게 된 것을 주께 아뢰어 봅시다. 답을 구하지 말고요.
(긴 침묵 약 1분 30초) 🌿🌿🌿
P05 김미영: (조용히) 주님, 저는 오늘 9절의 불을 봤습니다. 삼분의 일로 남았다고 끝이 아니라, 그 남은 자마저 불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신다는 말 앞에서 마음이 멎었습니다. 태우려는 불이 아니라 찌꺼기를 걷어 내려는 불이라는 걸 보면서도, 도가니에 들어간다는 건 여전히 두렵습니다. 그런데 그 불의 끝에서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내 안의 무엇이 아직 연단을 지나야 하는지, 답은 구하지 않고, 불꽃 위에서 만나는 그 "이는 내 백성이라" 한 마디만 붙들겠습니다.
*— 그 순간 떠오른 것을 각자 마음에만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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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단계] 운동·도약
성령일 선교사: 표면 관찰을 여기서 거두겠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어디서 어디로 움직이는지요? 눈에 보이는 일 아래에서 무엇이 회복되고 있는지요? 이 본문이 품은 긴장은 무엇인지요? 이 불이 우리 안에서도 타오르고 있는지요?
(침묵 약 45초) 🌿🌿
P02 이진우: 구조로 보면 13장은 더러움을 씻는 정결에서 언약의 회복으로 움직여요. 스가랴서 후반부(9~14장)의 흐름에서 보면, 13장은 12장의 애통과 14장의 여호와의 날 사이에 놓인 정결의 국면이에요 — 12장이 찔린 자를 바라보며 통곡하는 슬픔이라면, 13장은 그 슬픔이 흘러들어 씻는 샘이 되고, 14장은 예루살렘에서 생수가 솟아 여호와가 온 땅의 왕이 되시는 날로 열려요. 그런데 이 한 장이 그 큰 흐름의 심장을 품어요. 씻김도 흩음도 연단도, 그 끝이 "이는 내 백성이라 /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는 언약 공식이에요 — 정결과 심판이 아무리 깊어도 그것이 겨눈 것은 파괴가 아니라 회복된 관계라는 것. 물로 씻고(1절) 불로 연단하는(9절) 두 정결 사이에 목자를 치는 흩음(7절)이 놓이고, 그 모두가 한 언약으로 수렴해요.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되찾기 위해 씻고 태우신다는 것 — 그것이 13장이 스가랴서 후반의 문턱에 둔 박동이에요.
P11 나경아: 원어로 단서를요. 시작의 maqor(샘, 1절)와 끝의 tzaraf·bachan(연단·시험, 9절)이 물과 불의 두 정결로 장을 감싸요. 그리고 그 끝에 ammi(내 백성)와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 놓여요 — 이건 레 26:12·렘 31:33의 언약 공식이에요. 흥미로운 건, 이 공식이 스가랴 8장 8절에서도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로 이미 울렸다는 거예요. 정결의 물과 연단의 불을 지나 그 옛 언약이 다시 발음돼요. 씻고 태우는 정결에서, 그 정결이 겨눈 언약의 재발음으로 옮겨 가는 운동의 한 마디가 13장에 놓여 있어요. 1:1의 씻는 샘과 9절의 "내 하나님"이 그 운동의 두 끝이에요. 해석은 미해결로 두고요.
P07 오지혜: 수면 아래로 보면, 표면은 거짓과 더러움을 끊고 남은 자마저 불로 연단하는 단호한 정결이에요. 그런데 그 아래에서는 씻어서 되찾으시려는 마음이 움직여요. 우상을 끊고, 거짓 선지자를 부인시키고, 목자를 치고, 삼분의 이를 멸하시는데 — 그 모든 걷어 냄의 끝이 곧바로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으리라"예요. 정결의 그 서슬조차, 백성을 없애려는 게 아니라 부름과 응답이 오갈 만큼 깨끗한 관계를 되찾으려는 것처럼 보여요. 씻는 샘의 자리(1절)와 연단의 불의 자리(9절)가 다 언약을 향하니까요. 13장이 지키려는 것은 심판의 냉정함이 아니라 씻긴 자리에서 되살아나는 언약처럼 보여요. 다만 본문이 드러내는 한에서만 그렇게 가리키고, 그 의중을 다 풀이하지는 않겠어요.
P01 한나래: 긴장이에요. 13장은 7절에서 '치는 손'과 '지키는 손'이 양쪽에서 당겨요. "목자를 치라"로 흩으시는데, 같은 절에서 "작은 자들 위에는 내 손을 드리우리라"로 지키세요. 흩음과 보호가 한 문장 위에 겹쳐 있어요. 그리고 8~9절도 그래요 — 삼분의 이를 멸하시면서 삼분의 일은 남겨 연단하세요. 버림과 남김이 마주 봐요. 그 겹침이 13장을 서슬 퍼렇으면서도 열린 장으로 만들어요. 14장의 여호와의 날, 생수가 솟고 여호와가 왕 되시는 그 회복까지 이 긴장이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면, 그게 13장이 여는 가장 긴 결이에요. 다만 그 결을 단정하지 않고 두겠어요.
P05 김미영: 이 불이 우리 안에서 타오르느냐 물으시니 — 저는 9절의 도가니가 불씨 같아요.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남았다고 안심하는 게 아니라, 남은 자도 통과해야 하는 불. 내 안에 아직 걷히지 않은 찌꺼기가 무엇인가, 나는 그 불을 피하려고만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 불의 끝이 파괴가 아니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라면, 도가니는 버려지는 자리가 아니라 언약이 발음되는 자리예요. 각자 자기 안의 불 앞에서, 무엇이 연단되어 그 고백에 이르려는지 떠올라요. 저한테는 아직 질문이에요. 질문인 채로 쥐고 갑니다.
성령일 선교사: 좋습니다. 더러움을 씻는 정결에서 언약의 회복으로, 물과 불의 두 정결이 겨눈 재발음으로, 씻어서 되찾으시려는 마음으로 흩으시면서도 작은 자들 위에 손을 얹으시고 남은 자를 불로 연단해 '이는 내 백성이라' 부르는 — 그 운동 한 줄을 손에 쥐고 다음 장으로 갑니다. 씻고 연단하시는 이 장에서, 여호와의 날이 임하여 예루살렘에서 생수가 솟고 여호와가 온 땅의 왕이 되시는 데로 옮겨 갑니다.
단계 2~7 첫 느낌 · 시작과 끝 · 등장인물 · 장면 컷 · 의문 · 동영상 시뮬레이션 보기 →
2~7단계 관찰된 사실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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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_id: ZEC-013
book: 스가랴
chapter: 13
date: 20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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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13장 — 관찰된 사실 (LOCKED v2.0 9단계 형식)
단계 라벨은 LOCKED v2.0 가이드 원문 그대로.
1️⃣ 무대 장치, 배경, 소품, 소재 찾기
- 옮겨 다니는 무대: 씻는 샘(1절) → 우상·영을 끊는 광장(2절) → 선지자가 부인하는 무대(3~6절) → 목자가 맞고 양이 흩어지는 들판(7절) → 삼분의 일이 연단되는 도가니(8~9절).
- 소품(털옷): 선지자의 표지였던 털옷(adderet se'ar, 4절)을 벗어 속이지 않음. 정결의 날에는 표지도 벗겨짐.
- 소품(상처): 두 팔 사이의 상처(makkot, 6절) —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는 문답으로 감춘 것이 드러남.
- 소재(칼): 원수 아닌 "내 목자, 내 짝 된 자(gever amiti)"를 향하는 칼(7절). 소재 하나가 무대의 결을 바꿈.
- 소재(전환): 씻고 끊고 벗기는 정결(1~6절) → 치고 흩는 목자(7절) → 태우고 연단하고 남기는 도가니(8~9절).
- 배경(막간 없음): 12장의 애통("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과 13:1의 씻는 샘 사이에 막간이 없음 — 우는 자리가 곧 씻기는 자리.
2️⃣ 첫 느낌, 분위기 기록하기
- 애통 뒤 열리는 샘의 시원함과, 몸의 상처까지 파내는 정결의 서늘함이 함께 있음(1·6절).
- 선지자 이름을 부끄러워 부인하는 시린 목소리 —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5절).
- 정적(정결)에서 격동(칼)으로 확 바뀌는 7절, 목자 한 사람에서 흩어진 양 떼로 물러나는 카메라.
- 태워 없애는 불이 아니라 연단하는 불(9절), 그 뜨거움이 파괴가 아니라 정련임을 느끼는 순간의 결.
- 7절 amit(나와 나란한 자)의 무거운 울림 — 친밀한 자를 치라 하시는 하나님 편의 아픔(반향은 미해결로 보존).
3️⃣ 본문이 어떻게 시작하여 어떻게 끝나는지 기록하기
- 1절: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 9절: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 무게 이동: 밖에서 부어 씻는 물(1절)에서 안에서 부르고 응답하는 언약(9절)으로. 7절 목자 치심과 8절 삼분의 이 멸망이 가장 어두운 골짜기.
- 매듭의 짝: 시작의 물(샘, 1절)↔끝의 불(도가니, 9절) — 밖에서 씻는 정결이 안에서 태우는 정련으로 이어짐.
4️⃣ 등장인물 또는 사물을 나열하고 처한 상황과 사상 파악하기
- 인물: 여호와(샘을 열고 우상·선지자를 끊고 목자를 치라 명하며 삼분의 일을 연단해 "내 백성"이라 부름),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1절), 거짓 선지자(부모에게 찔리고 "나는 농부라" 부인, 3~5절), 찌르는 부모(3절), "내 목자, 내 짝 된 자"(7절), 흩어진 양과 작은 자들(7절), 삼분의 이(멸망)와 삼분의 일(연단된 남은 자, 8~9절).
- 상황: "그 날에"(1·2·4절)의 정결 — 샘이 열리고, 우상·거짓 선지자·더러운 영이 끊기고, 선지자가 부인함 → 목자 치심과 흩음(7절) → 온 땅의 삼분화와 삼분의 일의 연단(8~9절).
- 사상: 씻고 끊고 치고 태우는 모든 정결·심판이 9절 언약 공식("이는 내 백성이라 /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으로 수렴 — 파괴 아닌 언약이 목적.
- 7절 — "목자를 치라"(흩음)와 "작은 자들 위에 내 손을 드리우리라"(보호)가 한 절에 겹침. 그 논리는 본문이 직접 풀지 않음.
- 8절 — 삼분의 이는 멸망, 삼분의 일만 남고 그마저 불을 통과함. 그 셈의 까닭은 단정하지 않음.
5️⃣ 장면·사건을 나누어 몇 컷의 사진 얻기
- 컷 1 (1절): 열린 샘 — 죄와 더러움을 씻는 근원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을 위해 열림.
- 컷 2 (2절): 끊음 — 우상의 이름을 기억도 못하게 끊고,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영을 땅에서 떠나게 함.
- 컷 3 (3~6절): 부인하는 선지자 — 부모가 찌르고, 털옷을 벗으며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 컷 4 (7절): 맞은 목자 — "칼아 깨어서 내 목자를 치라", 양이 흩어지되 작은 자들 위에 손을 드리움.
- 컷 5 (8~9절): 연단된 삼분의 일 — 삼분의 이 멸망, 삼분의 일을 불로 은 같이 연단하고 금 같이 시험, "내 백성 / 내 하나님".
6️⃣ 의문·발견·정보 — (1) 원어 카드
- maqor(מָקוֹר) — 샘·근원. 1절. / niddah(נִדָּה) — 더러움·부정. 1절.
- atzabbim(עֲצַבִּים) — 우상. 2절. / ruach hatum'ah(רוּחַ הַטֻּמְאָה) — 더러운 영. 2절.
- adderet se'ar(אַדֶּרֶת שֵׂעָר) — 털옷. 4절. / oved adamah(עֹבֵד אֲדָמָה) — 농부. 5절. / makkot(מַכּוֹת) — 상처. 6절.
- gever amiti(גֶּבֶר עֲמִיתִי) — 내 짝 된 자, amit(עָמִית) 동료·나란한 자. 7절. / tzoarim(צֹעֲרִים) — 작은 자들. 7절.
- shelishit(שְׁלִשִׁית) — 삼분의 일. 8절. / tzaraf(צָרַף)·bachan(בָּחַן) — 연단·시험. 9절. / ammi(עַמִּי) — 내 백성. 9절.
6️⃣ 의문·발견·정보 — (2) 문학 구조
- "그 날에"(bayom hahu) 후렴: 1·2·4절을 세 번 여는 정결의 날 표지.
- 물과 불의 수미상관: 시작의 샘(1절, 물)과 끝의 도가니(9절, 불)가 장을 두 정결로 감쌈.
- 선지자 부인 화법: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5절) — 이름이 부끄러움이 된 시대의 직접 화법.
- 맞은 목자·흩어진 양(7절): 치는 손과 지키는 손이 한 절에 겹침.
- 언약 공식 재발음: 9절이 "나는 그들의 하나님, 그들은 내 백성"(레 26:12·렘 31:33) 공식을 되살림.
6️⃣ 의문·발견·정보 — (3) ANE·배경
- 털옷(adderet se'ar) — 엘리야(왕하 1:8)와 세례 요한(마 3:4)이 입은 선지자의 표지. 13:4는 그 표지를 벗겨 거짓을 드러냄.
- 몸의 자해 — 바알 선지자가 칼과 창으로 몸을 상하게 한 이교 예배(왕상 18:28)의 배경. 13:6 상처가 그 그림자를 스칠 수 있음.
- 연단(tzaraf) 이미지 — 은과 금을 도가니 불에 녹여 불순물을 걷는 야금 은유(말 3:2-3, 벧전 1:7).
- 포로기 이후 정황 — 스가랴 후반부의 예언은 성전 재건 이후 공동체를 향한 것으로, 거짓 예언과 우상의 잔재를 씻는 정결이 그 배경.
6️⃣ 의문·발견·정보 — (4) 교차 참조 노드
- 슥 13 ↔ 슥 12:10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애통 — 12장 애통이 13:1 씻는 샘으로 흘러듦)
- 슥 13 ↔ 마 26:31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이 흩어지리라 — 예수께서 겟세마네에서 13:7을 자신에게 적용)
- 슥 13 ↔ 왕하 1:8 / 마 3:4 (털옷 입은 선지자 — 13:4가 벗기는 거짓의 표지)
- 슥 13 ↔ 왕상 18:28 (바알 선지자가 몸을 상하게 함 — 13:6 상처의 이교 배경)
- 슥 13 ↔ 말 3:2-3 / 벧전 1:7 (은을 연단하는 자 · 불로 시험받는 믿음 — 13:9 연단 이미지)
- 슥 13 ↔ 레 26:12 / 렘 31:33 (나는 그들의 하나님, 그들은 내 백성 — 13:9가 되살리는 언약 공식)
7️⃣ 상황의 흐름, 논지를 연결하여 동영상 얻기
앞 장의 애통이 화면에 남아 있다 — 찔린 그를 바라보며 통곡하던 밤. 그 눈물 위로 "그 날에"라는 자막이 뜨고, 마른 땅에서 씻는 샘이 솟아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을 향해 열린다. 물이 흐르자 화면이 넓어져 우상의 이름이 지워지고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영이 걷힌다. 한 광장에서 거짓을 예언한 자를 그 부모가 찌르고, 선지자들이 털옷을 벗으며 손사래 친다 —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누군가 그 팔을 붙들고 묻자 그가 눈을 피한다 —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이름이 부끄러움이 된 날. 그때 화면이 어두워지고 음성이 칼을 부른다 —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칼이 목자를 치자 그가 쓰러지고, 카메라가 물러나 사방으로 흩어지는 양을 비춘다. 그 흩어짐 가운데 작은 자들 위로 한 손이 드리워진다 — 치는 손과 지키는 손이 겹친다. 화면이 온 땅으로 열려 삼분의 이가 스러지고 삼분의 일이 남는다. 그 남은 자마저 불에 들어가 은이 녹고 금이 시험된다. 불꽃 사이에서 목소리가 오른다 — "여호와여." 응답이 내린다 — "이는 내 백성이라." 다시 오른다 —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부름과 응답이 불 위에서 만난다. 암전.
8️⃣ 초벌 제목과 부제 정하기
- 초벌 제목: "물로 씻고 불로 연단하여 — 파낸 정결의 끝에 되살아나는 언약"
- 초벌 부제: "12장의 애통 바로 다음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을 위해 열리고, 우상과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영이 끊겨 선지자가 '나는 농부라' 부인하는 정결의 무대에서,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로 목자를 치매 양이 흩어지되 작은 자들 위에 손을 드리우시고, 온 땅의 삼분의 이가 멸망하고 남은 삼분의 일을 불로 연단하여 '이는 내 백성이라 /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는 언약 공식을 되살리는 스가랴의 정결 예언"
품질 체크 자가감사 (6/6)
- [x] 원어 어휘 3개 이상 (16개 기록)
- [x] 역사·문학 사실 최소 1개 (털옷 선지자 표지 + 이교 자해 배경 + 연단 야금 은유 + 언약 공식 재발음 + 겟세마네 마 26:31 인용 + 12장 애통 연결)
- [x] 미해결 질문 1개 이상 (6건)
- [x] 진행자 "가르치기" 문장 0건
- [x] 상투어 과반복 없음
- [x] 묵상 어휘 진행자 발화 0건
9단계 자가감사
- [x] 1~9단계 전 항목 기록됨 + [10단계] 운동·도약 기록됨
드리프트 관찰
- 7절의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특정 인물로 확정하지 않고, 마 26:31의 인용을 관찰로 기록하되 신학적 확장은 묵상으로 이월.
- 9절의 삼분의 일 연단을 구원론·종말론 교리로 봉합하지 않고, 13장이 '물과 불의 정결이 언약으로 수렴한다'를 보이는 한에서 관찰로만 둠.
- 6절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의 정체를 자해 흔적으로 단정하지 않고, 본문이 그 정체를 밝히지 않는 채 두는 결을 유지.
단계 8~9 초벌 제목·부제 · 동영상 안 걷기·기도 시뮬레이션 보기 →
8단계 초벌 제목·부제. 9단계 동영상 안 걷기·기도. 답을 구하지 않고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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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_id: ZEC-013
book: 스가랴
chapter: 13
date: 20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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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13장 — 미해결 질문 (LOCKED)
관찰 단계에서는 답하지 않고 보존. 묵상·사귐 단계로 이월.
Q1. 7절에서 "목자를 치라"(흩음)와 "작은 자들 위에 내 손을 드리우리라"(보호)가 어떻게 한 절에 같이 서는가?
- 같은 절 안에서 치는 손과 지키는 손이 마주 본다. 목자를 쳐서 양을 흩으시면서, 동시에 작은 자들 위에는 손을 얹으신다. 흩음이 곧 버림이 아님을, 본문은 두 손을 나란히 두되 그 사이 논리를 직접 풀지 않는다. 보존.
Q2. "내 목자, 내 짝 된 자(gever amiti)"는 누구인가? 왜 하나님은 원수가 아니라 '나와 나란한 자'를 치라 하시는가?
- amit(동료·나란한 자)은 하나님이 그 목자를 자신과 나란히 두시는 친밀함을 담는다. 그런 자를 치라 하시니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 편의 아픔이 밴 것처럼 들린다. 그 목자의 정체를 13장은 이름으로 밝히지 않는다. 마 26:31이 이 절을 인용하나, 그 확장은 묵상의 몫으로 둔다. 보존.
Q3. 6절 "네 두 팔 사이의 상처"와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는 문답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 어떤 이는 이 상처를 우상 예배 자해(왕상 18:28)의 흔적을 숨기려는 변명으로, 어떤 이는 다른 상처로 읽는다.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는 표현이 무엇을 감추거나 드러내는지, 본문은 그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보존.
Q4. 왜 온 땅의 삼분의 이가 멸망하고 삼분의 일만 남으며, 그 남은 자마저 불을 통과해야 하는가?
- 남는 자가 다수가 아니라 삼분의 일이며, 그마저 은 같이 연단되고 금 같이 시험받는다. 이 삼분의 셈과 남은 자에게도 필요한 불의 까닭을, 본문은 잘라 말하지 않는다. 남김이 좁고 남은 자에게도 도가니가 있다는 사실만 담담히 둔다. 보존.
Q5. 시작의 씻는 샘(1절, 물)과 끝의 연단하는 불(9절, 불)은 어떻게 한 정결로 이어지는가?
- 밖에서 부어 죄를 씻는 물과, 안에서 태워 찌꺼기를 걷는 불이 한 장의 양 끝에 놓인다. 씻고도 남은 것을 불이 마저 연단한다. 두 정결의 관계와 순서를, 본문은 나란히 세우되 직접 잇지 않는다. 보존.
Q6. 애통(12:10~14)과 씻는 샘(13:1), 정결(13:2~9)과 여호와의 날(14장)은 어떤 순서의 논리로 이어지는가?
- 12장은 찔린 자를 바라보며 통곡하고, 13장은 그 슬픔이 씻는 샘이 되어 정결로 흐르며, 14장은 생수가 솟고 여호와가 왕 되시는 날로 연다. 애통·정결·회복이 어떻게 한 흐름이 되는지 — 본문 배치가 셋을 잇되 13장 스스로 그 연결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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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들은 묵상 단계에서 재방문. 관찰 단계는 여기서 멈춘다.
애통 뒤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을 여시고 거짓 선지자와 우상을 끊어 이름마저 부인시키신 뒤,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로 목자를 치매 양이 흩어지되 작은 자들 위에 손을 드리우시고, 남은 삼분의 일을 불로 연단해 "이는 내 백성이라 /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는 언약을 되살리시는 스가랴의 정결 예언.
9단계 관찰을 한 곳에 모읍니다. 표면 정리 위에 구속사 좌표·운동 벡터·수면 아래·실존적 부름의 심층 4블록(G·H·I·J)을 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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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_id: ZEC-013
type: synthesis
version: v2.1
created: 20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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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정리
A · 한 장의 골격
한 문장: 스가랴 13장은 12장의 애통("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바로 다음에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maqor)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13:1)로 열려, 우상의 이름과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영을 땅에서 끊어(13:2) 선지자 노릇이 부끄러운 일이 되어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13:5) 부인하게 하시고, 이어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gever amiti)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13:7)로 흩음과 보호를 한 절에 겹치신 뒤, "온 땅에서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남으리니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하여"(13:8-9) "이는 내 백성이라"와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는 언약 공식(레 26:12·렘 31:33)을 되살리시는 — 물과 불의 두 정결이 언약으로 수렴하는, 스가랴서 후반의 정결의 한 장이다.
한 문단: 찔린 자를 바라보며 통곡하던 밤 다음, "그 날에"라는 음성과 함께 마른 땅에서 씻는 샘이 솟는다. 죄와 더러움을 씻는 근원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을 향해 열린다. 물이 흐르자 땅에서 우상의 이름이 지워지고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영이 걷힌다. 거짓을 예언한 자를 그 부모가 찌르고, 선지자들이 털옷을 벗으며 손사래 친다 — 나는 선지자가 아니라, 농부일 뿐이라. 이름이 부끄러움이 된 날이다. 그때 화면이 어두워지고 음성이 칼을 부른다 —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나와 나란한 자를 치라. 목자가 쓰러지자 양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러나 그 흩어짐 가운데 작은 자들 위로 한 손이 드리워진다. 화면이 온 땅으로 열려 삼분의 이가 스러지고 삼분의 일이 남는다. 남은 자마저 불에 들어가 은이 녹고 금이 시험된다. 불꽃 사이에서 목소리가 오르고 응답이 내린다 — 이는 내 백성이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부름과 응답이 불 위에서 만나며 13장이 닫힌다.
B · 9단계 통합 표
| 단계 | 핵심 발견 |
|---|---|
| 1 무대·배경·소품·소재 | 샘·광장·들판·도가니로 옮겨 다니는 무대, 벗겨지는 털옷과 드러나는 상처, 원수 아닌 '내 짝 된 자'를 향하는 칼, 12장 애통과 13:1 샘의 막간 없는 이음. |
| 2 첫 느낌·분위기 | 애통 뒤 샘의 시원함과 파내는 정결의 서늘함. 이름을 부인하는 시린 목소리. 태우지 않고 연단하는 불. |
| 3 시작과 끝 | 밖에서 씻는 물(1절)에서 안에서 부르고 응답하는 언약(9절)으로. 물과 불이 한 장의 양 끝. |
| 4 등장인물·사상 | 여호와·다윗의 족속·거짓 선지자·맞은 목자·흩어진 양·삼분의 일. 모든 정결이 9절 언약 공식으로 수렴. |
| 5 장면 컷 | 열린 샘(1)/끊음(2)/부인하는 선지자(3~6)/맞은 목자(7)/연단된 삼분의 일(8~9) 5컷. |
| 6 의문·발견·정보 | 물과 불의 대칭. 겟세마네 마 26:31 인용. 치는 손과 지키는 손의 긴장. 말 3장·벧전 1장의 연단 이미지. |
| 7 동영상 | 애통 위로 솟는 샘 → 우상·선지자 끊음 → 이름의 부인 → 맞은 목자와 흩어진 양 → 불 속 삼분의 일, 부름과 응답. |
| 8 초벌 제목·부제 | "물로 씻고 불로 연단하여 — 파낸 정결의 끝에 되살아나는 언약" |
| 9 기도·내면 | 9절의 불을 본다. 내 안의 걷히지 않은 찌꺼기를 묻고, "이는 내 백성이라"는 한 마디만 붙들고 답은 구하지 않는다. |
C · 본문이 본문을 읽게 하는 세 결
1. 결 1 — 애통이 흘러든 샘: 13장의 씻는 샘은 12장의 애통 바로 다음에 온다. 찔린 자를 바라보며 통곡하던(12:10) 그 슬픔이 채 그치기 전에, 마른 땅에서 죄와 더러움을 씻는 근원(maqor)이 열린다(13:1). 우는 자리가 곧 씻기는 자리다. 정결이 메마른 명령이 아니라 슬픔이 고여 흐른 물길임을 — 이것이 13장이 스가랴서 후반의 정결을 여는 방식이다.
2. 결 2 — 씻고도 태움: 장의 시작(1절)은 물이고 끝(9절)은 불이다. 밖에서 부어 죄를 씻는 정결과, 안에서 녹여 찌꺼기를 걷는 정련이 한 장을 감싼다. 그런데 씻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 우상을 끊고 거짓 선지자를 부인시키고 목자를 치고 삼분의 이를 멸하고도, 남은 삼분의 일마저 불을 통과한다. 정결은 물 한 번으로 완결되지 않고, 흩음과 불을 거쳐 언약에 이른다.
3. 결 3 — 정결이 겨눈 언약: 씻고 끊고 치고 태우는 모든 국면의 끝은 파괴가 아니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으리라, 이는 내 백성이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13:9)이다. 이는 레위기 26장과 예레미야 31장의 언약 공식이 되살아난 것이다. 정결의 서슬조차 백성을 없애려는 게 아니라, 부름과 응답이 오갈 만큼 깨끗한 관계를 되찾으려는 것으로 수렴한다. 그리고 이 흐름은 마 26:31(맞은 목자)로 다시 살아나고, 말 3:2-3과 벧전 1:7의 연단으로 울린다.
D · 다른 본문과의 다리
- 슥 12:10 —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애통하리라." 12장의 애통이 13:1 씻는 샘으로 흘러듦.
- 마 26:31 —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예수께서 겟세마네에서 13:7을 자신에게 적용해 인용.
- 왕하 1:8 / 마 3:4 — 털옷 입은 선지자(엘리야·세례 요한). 13:4가 벗기는 거짓의 표지.
- 말 3:2-3 / 벧전 1:7 — "은을 연단하는 자 같이 앉아" ·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귀한 믿음." 13:9 연단 이미지의 반향.
- 레 26:12 / 렘 31:33 —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13:9가 되살리는 언약 공식.
E · 한 사람의 의식흐름
- 시작: 1절에서 시작한다 — 애통 뒤에 열리는 씻는 샘. 우는 자리가 씻기는 자리임을 본다.
- 멈춤 1: 5절에서 멈춘다 —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이름이 부끄러움이 된 부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 멈춤 2: 7절에서 멈춘다 — "내 목자를 치라." 흩는 손과 지키는 손이 겹친 자리에 선다.
- 끝: 9절에서 멈춘다 —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불을 통과한 부름과 응답 앞에 선다.
F · 자족성 점검
- [x] 1절 씻는 샘 — 죄와 더러움을 씻는 근원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을 위해 열림
- [x] 2절 끊음 — 우상의 이름과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영을 땅에서 제거
- [x] 3~6절 부인하는 선지자 — 부모의 찌름, 벗는 털옷, "나는 농부라", 두 팔 사이의 상처
- [x] 7절 맞은 목자와 흩어진 양, 작은 자들 위에 드리운 손
- [x] 8~9절 삼분의 이 멸망·삼분의 일 연단·"내 백성 / 내 하나님"의 언약 공식
G · 구속사 좌표 — 이 장은 어디인가
스가랴 후반부(9~14장)의 spine은 '목자와 양, 찔림과 애통을 지나 여호와가 온 땅의 왕이 되시는 날로 나아간다'이며, destination은 14장의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예루살렘에서 생수가 솟아나리라"의 통치와 소생이다(book-telos). 후반부의 흐름은 목자 예언과 값 매김(11장), 찔린 자를 바라보는 온 땅의 애통(12장), 씻는 샘과 목자 치심과 연단된 삼분의 일(13장), 여호와의 날과 생수·왕 되심(14장)으로 움직이는데, 13장은 바로 애통(12장)과 여호와의 날(14장) 사이, 그 슬픔을 정결로 흘려보내는 문턱에 있다. 그런데 13장은 그 자리에서 이미 후반부 전체의 심장을 품는다 — 씻김도 흩음도 연단도 그것이 겨눈 것은 파괴가 아니라 회복된 언약이라는 것. 13:1과 13:9 — 애통을 씻는 샘 다음에, 불을 통과한 삼분의 일이 "이는 내 백성이라 /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로 언약을 되살린다. 찔림과 애통을 지나 왕 되심으로 나아가는 후반부의 spine이, 이 한 장의 물과 불의 정결에 이미 응축된다.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되찾기 위해 씻고 태우시는 마음 — 그것이 스가랴서 후반의 문턱에서 13장이 품은 박동이다. 그리고 이 맞은 목자(13:7)는 마 26:31에서 겟세마네의 밤에 다시 살아나고, 연단의 불(13:9)은 말 3장과 벧전 1장으로 흐른다. 그러므로 13장은 애통과 회복 사이에 놓인 정결의 좌표다 — 슬픔이 씻는 샘이 되고, 그 정결이 언약으로 수렴하는 지점.
H · 운동 벡터 — 무엇에서 무엇으로
애통을 씻는 정결에서 되살아나는 언약으로 / 밖에서 씻는 물에서 안에서 연단하는 불로 / 거짓과 우상을 끊고 목자를 치는 흩음에서 "이는 내 백성이라"는 재발음으로.
한 화살표로 좁히면, 13장은 '슬픔을 흘려보내는 씻김'을 지나 '흩고 태운 그 끝에서 내 백성이라 부르는' 언약을 향한 운동이다. 다만 이 언약은 종결이 아니라 한 마디다 — 13장의 씻는 샘에서 시작해 삼분의 일의 연단을 지나, 14장의 여호와의 날, 생수와 왕 되심의 소생까지, 13장이 연 그 정결의 길은 긴 호의 한 구간이다. 13장의 벡터는 스가랴서 후반을 '애통에서 왕 되심으로, 정결에서 언약으로' 끌고 가는 운동의 심장 박동 한 마디다.
I · 수면 아래 — 가시적 사건 아래의 본질
표면은 거짓과 더러움을 끊고 남은 자마저 불로 연단하는 단호한 정결이다. 그러나 수면 아래에서 흐르는 것은 씻어서 되찾으시려는 마음이다. 우상을 끊고, 거짓 선지자를 부인시키고, 목자를 치고, 삼분의 이를 멸하시는데 — 그 모든 걷어 냄의 끝이 곧바로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으리라"다. 정결의 그 서슬조차, 백성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부름과 응답이 오갈 만큼 깨끗한 관계를 되찾으려는 손길처럼 읽힌다. 씻는 샘의 자리(1절)와 연단의 불의 자리(9절)가 다 언약을 향하니까. 특히 7절이 그 의중을 드러낸다 — 목자를 치매 양이 흩어지되, 같은 절에서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흩으시는 손과 지키시는 손이 한 문장에 겹쳐 있다. 정직한 흩음과 놓지 못하는 보호가 같은 음성 안에 있는 것 — 가장 어두운 목자 치심과 삼분의 이의 멸망 바로 그 자리가 곧 삼분의 일이 언약을 되찾는 자리인 것, 이것이 13장의 깊은 물길이다. 다만 7절의 겹침과 8절 삼분의 셈을 다 풀이하지 않고, 본문이 드러내는 한에서만 가리킨다.
J · 실존적 부름 — 한 줄의 불씨
내 안에 아직 씻기지 않은 더러움, 걷히지 않은 찌꺼기는 무엇인가 — 물로 씻고도 남은 것을 불이 마저 연단하는 그 도가니 앞에서, 나는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 발음되는 자리에 서 있는가.
이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초대다. 본문은 독자에게 연단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1절의 열린 샘이 옛 예루살렘에만 흐른 것이 아님을 알아차리게 한다 — 나의 애통은 씻는 샘으로 흘러들었는가, 아니면 슬픔인 채 고여만 있는가. 그리고 9절의 도가니, 곧 후반부의 심장이 독자를 향한다 — 남았다고 안심하는 게 아니라, 남은 자도 통과하는 불이 있다. 그런데 그 불의 끝이 파괴가 아니라 "이는 내 백성이라"는 부름이라면, 도가니는 버려지는 자리가 아니라 언약이 발음되는 자리다. 13장은 씻는 샘과 연단하는 불 앞에 독자를 세워 두고, 답을 강요하는 대신 애통이 흘러든 정결, 흩음 속에 겹친 지키는 손, 불을 통과해 되살아나는 언약을 보여 준다. 애통 위에 샘을 여시고 목자를 치신 그 음성이, 남은 자를 불로 연단해 내 백성이라 부르시며 독자를 부르는 불씨다.
다음 장으로 미는 운동 한 줄: 씻고 연단하시는 이 장에서, 여호와의 날이 임하여 예루살렘에서 생수가 솟고 여호와가 온 땅의 왕이 되시는 데로 옮겨 간다 — 정결의 샘이 흘러 생수의 강이 되고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는" 데로(14:8-9).
이 장에서 가져갈 한 단어: tzaraf —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그 끝에 이는 내 백성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