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AI 시대'라는 말 앞에서 우리는 일자리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진짜 흔들리는 것은 일자리의 수가 아니라, 일을 하는 마음의 온도다.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AI가 다 하면, 나는 뭐 하지?" 나는 잠깐 답을 멈췄다. 그 질문이 너무 익숙해서 슬펐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하는 일의 양'으로 정의해왔다. 양이 줄면 자기 존재가 줄어드는 것처럼.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 질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첫째 갈래는 일자리의 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2024년 보고서는 2030년까지 한국 전체 직무 가운데 27%가 AI로 자동화 가능 영역에 들어간다고 추정했다. [KDI, 2024, AI와 한국 노동시장의 미래, kdi.re.kr] 큰 숫자다. 그러나 이 숫자에는 함정이 있다. 자동화 가능과 자동화 실현은 다르다. 1980년대 ATM이 도입됐을 때도 은행원이 사라진다는 예측이 있었다. 결과는 반대였다. ATM 덕에 지점 운영비가 줄자, 은행은 지점을 더 늘렸고, 은행원은 더 늘었다.
둘째 갈래는 마음의 온도다. 이 갈래는 통계로 잡히지 않는다. 자기 일의 의미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가. 한 사람이 내 앞에 앉아 있을 때, 나는 그 사람의 무엇에 닿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을 못하는 사람은 일자리가 보장돼도 흔들린다. 반대로 이 질문에 답하는 사람은 일자리가 바뀌어도 자기 일을 다시 짓는다.
네다바웨이의 일은 둘째 갈래에 자리잡고 있다.
오늘의 한 줄 질문 — 당신이 지금 하는 일의 의미를 60초 안에 한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AI가 답해 주지 않는다. AI는 당신을 모르기 때문이다. 당신이 누구를 향해 일하는지, 당신이 어떤 결핍을 보고 있는지, AI는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이 답은 당신만이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 답을 만드는 자리가, AI가 빼앗을 수 없는 마음의 온도다.
이 책은 그 온도를 다시 데우는 짧은 동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