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은 종종 '이기심이 사회를 굴린다'로 요약된다. 그러나 그가 먼저 쓴 도덕감정론은 정반대 자리에서 출발한다.
도덕감정론 첫 문장은 이렇다.
아무리 이기적으로 보이는 사람이라도, 그 본성에는 분명히 어떤 원리가 있어, 다른 사람의 운명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Adam Smith, 1759,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Part I, Section I, Chapter I]
스미스는 사람의 본성을 두 겹으로 봤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결과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결. 그가 국부론에서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이 두 결이 같이 작동할 때만 작동한다. 어느 한쪽만 강조하면 그건 스미스가 아니다.
일의 자리도 같다.
일을 자기 이익만으로 정의하면 일은 곧 시들해진다. 받는 보수 외에는 의미가 없으니까. 보수가 줄면 흔들리고, 보수가 늘면 또 다른 보수를 찾아 흔들린다.
일을 한 사람을 향한 행동으로 정의하면 일은 다시 살아난다. 그 사람이 누군가를 정확히 알면 알수록 일은 단단해진다. 보수는 따라온다.
한 줄 명제 — 직업의 속성은 이타성이다. 이때 이타성은 자기를 희생한다는 뜻이 아니라, 한 사람의 결핍을 본다는 뜻이다.
강의를 시작하기 전 나는 종종 묻는다. "오늘 이 강의를 들을 한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이름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어떤 결핍에 오늘 닿고 싶으십니까?"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강사는 60분이 끝났을 때 학습자가 한 문장을 가지고 나가게 만든다. 답할 수 없는 강사는 60분 동안 자기 이야기만 한다. 두 강의의 차이는 정보의 양이 아니라, 누구를 향했는가의 차이다.
일도 그렇다.
당신이 지금 하는 일에서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려 보라. 그 사람의 어떤 결핍에 당신은 닿고 있는가. 답이 떠오르지 않으면 일이 흔들린다. 답이 또렷해지면 일이 다시 데워진다.
이 책의 나머지는 그 답을 또렷하게 만드는 짧은 동행이다.